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도우 히카루 (문단 편집) == 재능 == [[후지와라노 사이|스승]]이 매우 뛰어난 것도 있지만 이를 본인이 제대로 흡수하면서 작중에서 재능이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명. 바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다른 사람들이 두던 바둑을 첫 수부터 다시 재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중학교 1학년 바둑부 대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바둑을 시작하여 1년 만에 프로 시험에 합격했다. 지도교사가 [[후지와라노 사이|바둑 역사상 최강자]]였다고는 해도 바둑 생초짜가 입문한 지 단 2년 만에 프로 시험에 합격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성장 속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재능이 뛰어난 유망주가 정상급 기사의 내제자로 들어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프로기사의 내제자로 들어가려면 재능을 인정받아야 가능한 것이기에 히카루의 성장 속도는 현실과 비교해 봐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무엇보다 작중 초반, 사이는 히카루의 재능에 자신이 이끌렸다고 독백하는데 이는 사이가 잠들어있던 바둑판에 조금이라도 접근했던 백수십년간의 무수한 사람들 중에 히카루의 재능이 가장 특별했다는 의미가 된다.[* 심지어 이 바둑판은 히카루의 집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던게 아니라 고물상을 전전할만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다.] 작중에서 히카루에 버금가는 재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캐릭터는 [[토우야 아키라]], [[쿠라타 아츠시]] 정도밖에 없는데 아키라는 어릴적부터 명인인 아버지인 토우야 코우요우 밑에서 영재교육을 받은지라 작중 다른 인물들도 쿠라타 아츠시랑 같은 재능 덩어리라고 평가한다. 실력은 히카루가 아키라보다 약간 처지는 정도로 묘사되지만, 북두배를 기점으로 히카루에게 부족하다고 평가받던 승리에 대한 집념이 메꿔지면서 동등해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히카루에게 겨우 이긴 고영하가 속으로 "일본에 토우야 아키라 말고 나와 대등한 상대가 또 있었어...!"라고 경악한 것을 보면 실력은 결말 시점에서는 아키라=히카루=고영하라고 볼 수 있다.] 바둑에 대한 재능 중에서도 특기로 꼽히는 건 [[속기#s-2]]와 수읽기. 속기의 경우 후쿠이와 바둑을 두면서 언급하기도 했고, 스스로도 속기를 잘한다고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원생 시험을 보기 위해 바둑부에서 두었던 다면기는 물론이고, 기원에서 훈련을 위해 두었던 다면기에서도 3명까지 깔끔하게 빅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히카루의 경우 최종적으로 4명과 둬서 3명은 무승부, 1명은 1집 차이로 실패했는데, 이에 대한 비교를 위해서인지 아키라는 네 명과 두어 깔끔하게 모두 무승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아키라의 경우 기력이 형편없는 사람까지 끼어 있어서 무승부를 만드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프로와 호선으로 두는 아마추어와의 대국에서도 노타임으로 두는 등 속기에 강하다는 묘사가 자주 나온다. 수읽기의 경우에는 속기를 바탕으로 빠르게 앞 국면을 예상하거나 경우의 수를 전부 돌려 '''악수를 호수로 바꾸는 식'''으로 묘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국을 멀리 내다보고 그 상황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수를 두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이는 그만큼의 수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다. 작중에는 무라카미(젊은사자전), 홍수영(기원 순례), 오치(프로 시험), 고영하(북두배)를 상대로 나왔다. 유도하기를 통한 낚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수읽기가 그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다. 그 외에 모양을 기억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바둑에 대해 이제 막 알아가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생으로 위장해서 카가, 츠츠이와 함께 참가했던 중학교 바둑 대회에서 다른 학생들이 두던 바둑을 그대로 처음부터 재연하는 모습을 보였고, 후에 프로가 된 후에 쿠라타와 두었던 일색바둑에서도 처음 두는 일색바둑임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이 제대로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재능을 종합적으로 보여줬던 것이 바로 토우야 명인과 사이가 두었던 인터넷 바둑의 검토 장면. 사이가 아무 말도 하지도 않고 있었던 상황에서 토우야 명인이 역전할 수 있는 수를 찾아냈다. 이런 재능 탓인지 많은 정상급 기사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토우야 명인, 오가타 세이지, 쿠와바라 혼인보 같은 정상급 기사들은 히카루에 대해 예의 주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연구회 스승 격인 모리시타 시게오[* 히카루가 와야의 주선으로 모리시타 시게오의 연구회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정식 문하생은 아니다.]도 혼인보전 2차 예선 당시 "다른 제자들보다 소질이 뛰어나다", "실력만 놓고 보면 나도 이기기 벅찰 정도"라고 평가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한 프로기사[* 모리시타 시게오 옆에서 시노다 원생 사범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사람.]는 "그 아이는 아직 初단이잖습니까?"라며 놀라기도 했다.] 와야가 자신이 다니는 연구회에 초대하기 전, 히카루는 평소에 어떻게 공부하냐라는 대화에서, 와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강한사람과 많이 두는것이 좋다"라고했을때, 매일 질리도록 [[후지와라노 사이|강한사람]]과 두고 있다고 속으로 말하자 사이는 "그런거에 비하면 히카루의 성장 속도가 느리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중요한 대국에선 [[주인공 보정]]을 그다지 받지 못한 편이라 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히카루의 바둑이 픽션이긴 하지만 당시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히카루의 바둑 스토리 작가인 홋타 유미는 고영하전 때 히카루가 진 건 '한국을 이기는 걸 '''상상할 수 없어서''''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실제로 히카루의 바둑이 연재되었던 1999년~2003년 당시는 돌부처 [[이창호]]를 앞세운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인 시절이었다. 특히나 작중에도 언급되지만 한국의 세대교체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배경인 주니어 연령대에서는 비교조차 안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